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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25 09:28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만들면 된다"
 글쓴이 : 광교세무법…
조회 : 1,273  

[정주영 1915.11.25~탄생 100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의 '이봐 해봤어?' 정신
첨단산업 달리는 中·日… 우린 정주영 세대가 일군 먹거리마저 위기

조선·자동차·반도체 잇는 미래 성장동력 찾아 키워야… '기업가 정신' 부활 시급
금수저·흙수저 논하는 시대… '元祖 흙수저'인 그의 메시지
"청년들, 이봐 해봤어?"

"1915년 11월 25일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던 청년의 삶이 시작됐습니다."

24일 오후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산(峨山) 정주영 탄신 100주년' 기념식에서 정주영의 삶을 조명한 15분짜리 동영상은 이렇게 시작했다. 꼭 100년 전 정주영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 마을의 세 칸짜리 초가에서 소작농 집안 8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주영만큼 파란만장하고, 극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산 인물은 드물다. 가출 후 엿 공장 심부름꾼, 쌀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당시 세계 최빈국(最貧國)이던 한국에서 자동차 산업을, 조선(造船)업을, 중공업을, 건설업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스스로 "나는 부유한 뇌동자(노동자의 사투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고(故) 유창순 전 국무총리는 그를 두고 "하늘이 우리나라를 가련하게 생각해 내려주신 위대한 사업가"라고 했다.

정주영이 태어난 지 100년인 오늘, 대한민국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그를 그리워한다. 왜일까.

25일은 고(故)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날이다. 사진은 1980년대 아산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횡단보도를 달리면서 건너는 모습이다. 그는 종종 청운동 자택에서 광화문 사옥까지 걸어서 출근했다.
25일은 고(故)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날이다. 사진은 1980년대 아산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횡단보도를 달리면서 건너는 모습이다. 그는 종종 청운동 자택에서 광화문 사옥까지 걸어서 출근했다. /솔 출판사 제공
한국 경제는 지금 사방의 높은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 성장 엔진인 수출은 올 들어 10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제조업 매출은 1961년 통계 작성 이후 53년 만에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경제 활력의 상징인 창업은 5년 후 생존율이 30%대에 불과하다. 올 들어 9월까지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은 55건으로 1998년 외환 위기(61건) 이후 가장 많다. 1인당 국민소득은 10년째 2만달러대의 늪에 빠져 있다.

이런 사이 중국은 고속철도는 물론 차세대 핵심 기술인 5세대(5G) 이동통신 표준 주도(主導)를 선언하고 나섰다.

일본은 상업위성 발사 같은 우주산업에 뛰어들면서 미래 먹거리를 발 빠르게 선점(先占)해 가고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KIET) 주력산업실장은 "지금 한국 경제는 1998년 외환 위기나 2008년 금융 위기와 달리 구조적·본질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위기를 돌파할 자신감 있는 기업인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정주영' 정리 표
그래서 우리는 "이봐 해봤어?"를 외친 정주영의 무한(無限) 도전과 무한 창의를 더 그리워한다. 그는 조선소가 들어설 울산 해변의 5만분의 1짜리 지도와 백사장(白沙場) 사진을 달랑 들고 유럽의 세계적 갑부를 찾아가 "당신이 내 배를 사주겠다고 하면 그걸 담보로 돈을 빌려 조선소를 지은 다음 당신 배를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해 성사시켰다. 이런 믿기지 않는 거래를 통해 그는 조선소 준공식과 첫 선박 명명식을 같은 날 치렀다. 세계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다.

무모한 도전 역정에는 꿈을 정한 다음 무한한 긍정 의식을 갖고 창조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주영식(式) 성공 방정식이 있다. 한평생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일례로 우리보다 몇 십 배 잘살던 나라조차 자체 브랜드 자동차 생산을 포기할 때 그는 "나는 죽어도 내 브랜드를 만들겠다"며 포니를 만들었다. 한국은 현재 세계 5위 자동차 생산 대국(大國)이다.

지금은 정주영이 활동했던 1960 ~80년대와는 판이하다. 경제 평론가 복거일은 "미국 구글이 운전자 없는 차를 개발하고 애플이 개인 휴대 단말기(PDA)의 시장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개발한 것처럼 정주영의 도전과 패기(覇氣)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업가 정신' 부활이 시급하다. 그가 활약했던 당시 사업 환경은 지금보다 규제가 훨씬 많았고 선진 기업과의 격차가 컸으며 그들의 견제도 심했다. 국내적으로도 기업인을 경시(輕視)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정주영은 이 모든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담대하면서도 치밀하게 새 사업을 일으켰다.

며칠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또 한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대한민국은 '이봐 해봤어? 2.0'으로 뭉친 기업인의 출현을 대망한다. 이들이 반도체·조선·자동차 산업을 잇는 향후 20년, 30년 먹거리를 찾아내 키워야 한다.

원조(元祖) '흙수저(가난한 집안 출신)' 정주영은 지금 한국 경제인들에게 '이봐 해봤어?'를 다시 묻고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손가락질했던 일에 정주영은 과감하게 도전해 기적 같은 성취를 일궈냈다"며 "한국 경제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주영 정신을 부흥(復興)하고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25/20151125004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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